제1과 하나님의얼굴

제1과 하나님의 얼굴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닷새 동안 낮과 밤, 땅과 바다, 그리고 온갖 식물들과 새들과 바다 속에서 사는 생물들을 만드셨다. 창조의 마지막 날인 엿샛날에 땅 위에서 기는 온갖 짐승들이 만드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다. 그런데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이 점에서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과 확연하게 구별이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직후에 그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 1:28).

이 말씀에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가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에 의해서 자연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 말씀은 그 본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은 지구의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른 지금 더 이상 축복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다. 세계의 인구는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는 5억에 불과했는데 2000년에 61억이 되었고 2030년경에는 100억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인구가 이런 식으로 계속 늘어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어떻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이 복이 될 수 있겠는가.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나이가 약 45억 년이라고 하는데 그 긴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훼손된 적이 없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여 년 동안에, 그 오랜 세월 동안 잘 보존되어 온 자연은 엄청나게 파괴되었고 이미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산업혁명의 주축이 된 서구 국가들이 대부분 그리스도교 국가들이기 때문에, 생태학자들은 환경 파괴를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특히 ‘땅을 정복하라’는 구절이 사람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자연을 파괴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도 생태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해 주는 인간 중심적인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생태계를 취재한 TV프로그램에서 이남에서나 이북에서나 멸종 위기에 있는 쉬리나 열목어 같은 희귀한 물고기들이 비무장지대에는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남과 북이 체제가 다르고 자연환경에 대한 정책도 다르겠지만 산과 강들을 파괴하는 데는 별로 다른 게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지뢰밭으로만 생각했던 비무장지대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자연은 사람이 손을 대지만 않으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 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야

이와 같이 생태학자들이 창세기 1장 28절을 인간중심적인 선언으로 해석하게 된 데는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다. 저명한 그리스도교 인사들 가운데는 자연을 오직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만물이 창조된 목적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과 편리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썼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우리가 짐승을 잔인하게 대하기를 금하는 구절이 성경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동물을 잔인하게 다룸으로써 사람에 대해서도 잔인해지거나 또는 사람이 다치게 되지나 않을까 해서이다”라고 했다. 헨리 모어(Henry More)라는 이는 하나님이 정원의 잡초를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잡초를 파내게 함으로써 근면성을 길러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였다. 윌리엄 커비(William Kirby) 목사는 하나님이 불결한 이(lice)를 만드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청결의 습관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심지어 뉴만(J. H. Newman)이라는 사람은 가톨릭백과사전에 실린 그의 글에서 “우리는 동물을 우리의 필요와 이익 또는 만족을 위해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하고 파괴해도 된다”고 쓰고 있다.

어릴 적에 도랑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와서 팔 다리에 붙어서 피를 빠는 거머리가 너무도 징그러웠다. 붙은 것을 떼려고 하면 잘 떨어지지도 않고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 어린 생각에 왜 이런 징그러운 것들이 있어서 사람을 괴롭히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떼어낼 때 너무 질기고 잘 늘어져서, 혹시 그것들을 잘 말려서 고무줄로 쓰면 안 되나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거머리를 본 지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 전문가들의 말을 들으니 거머리가 있는 곳은 아직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시골에서도 거머리를 거의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징그러워 보이고 질겨 보이던 거머리는 실제로는 이 정도의 강물의 오염에서도 생존하지도 못하는 나약한 것이었나 보다. 어떤 사람들은 그까짓 거머리가 사라진 것쯤이야 바퀴벌레가 사라지는 것만큼 환영할 일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억 년 전에 이 지구상에 출현하여 지금까지 한번도 위협을 받아본 적이 없던 것들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영원히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된 것을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최근 영국의 어느 의사가 의사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부위를 수술하거나 썩은 살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데 구더기나 거머리 따위를 이용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또 징그럽게만 보이던 지렁이가 실제로는 땅 속에서 엄청난 흙과 오염 물질을 먹고 배설하여 땅을 기름지게 하고 땅속에 수많은 구멍을 내서 땅속에 있는 생명체들이 숨쉬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또 어느 미군 군사 전문가는 바퀴벌레가 달리는 것을 연구하여 가장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빨리 달리는 효율적 구보 방법을 알아냈다는 보도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그런 용도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것들을 창조하셨다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인가. 바퀴벌레든 지렁이든 땅강아지든 뭐든 인간에게 필요해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런 것들은 대부분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에부터 존재해 온 것들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눈에는 쓸모없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기술사 교수인 화이트(Lynn White Jr.)는 자연 파괴의 사상적 근원은 유대교-기독교적인 인간중심적 자연관에 있다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게 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 때문인데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서양의 진보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 진보 사상은 유대교-기독교적인 종교의 토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성서의 창조 사상은 자연을 탈신성화, 탈마법화시켰으며, 그 결과 인간이 자연을 무제약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인비(A. Toynbee)도 자연 착취의 원인이 유일신 사상에 있다고 보고, 현재의 생태학적 위기에서 탈출하려면 유일신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내재적인 범신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비판들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서구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자연 파괴에 앞장서 온 것에 대하여 방관자의 자세를 취해 온 것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본래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정복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내용이라거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유일신적 세계관을 포기하고 범신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등등의 주장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정복하다(kabash)’라는 동사는 구약성서에서 일반적으로 상대방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8절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사람들을 창조하신 직후이다. 그때는 아직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지도 낙원에서 쫓겨나지도 않았을 때이며, 누구를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때이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라고 말씀하셨을 리가 없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의 밑바탕에는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악한 것으로 보는 사고가 깔려 있다. 이를테면, 밀림은 독사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곳이며, 깊은 바다 속에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레비아단)이 사람들을 삼키려고 용틀임을 하고 있으며, 깊은 강물에는 물귀신이 아이들을 삼키려고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사고이다.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이런 막연한 미신에 힘입어서, 사람들은 밀림을 밀어내고 고속도로를 내는 것이나, 어떤 풍랑에도 침몰되지 않는 엄청나게 큰 배를 만들어 바다를 정복하는 것이나, 강을 막고 댐을 쌓아 물을 관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창조 이야기에서는 자연을 이런 악마적인 것으로 보는 사고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 만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라는 사고가 전면에 나타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동안에, 중요한 창조가 마무리되는 순간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구절이 후렴구처럼 나온다. 엿새 동안의 창조 이야기에서만도 일곱 번이나 이 구절이 반복된다. 이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자연을 인간에게 파괴하고 착취하라고 내주셨을 리는 없다.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또 다른 동사 ‘다스리다(radah)’도 똑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 낱말은 일반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지배나 통치가 어떤 개념인지도 알지 못하던 최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연약한 생물들을 지배하라고 말씀하셨을 리는 없다.

이 구절을 옹호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스리다’라는 동사가 의미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아니라 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한다. 사람은 폭군으로서 자연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돌보고 다스리시는 자비로운 왕이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자연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무장지대에 온전히 보존된 생태계에서 보듯이, 자연은 사람이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두기만 하면 최선의 상태를 유지한다. 우리가 아무리 ‘지배’가 아니라 ‘돌봄’이라고 용어를 바꾼다고 해도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자연을 다스리고 돌볼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는 말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점에 대하여 김창락 교수는 다음과 같은 탁월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에서는 큰물을 처리하는 작업이 창조 활동의 주요 내용을 구성한다. 둘째 날의 창조 활동은 물 한가운데 궁창이 생기게 하여 위에 있는 물과 아래 있는 물로 가르는 일이었으며 셋째 날에 일어난 창조 활동의 하나는 아래 있는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가 되게 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 창조 이야기가 생겨난 곳은 큰물이 있는 곳이며, 거기에서는 큰물과 싸우는 것이 인간의 가장 중대한 과제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 또 다른 창조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 나타난 창조 당시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 땅 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 창조 이야기가 생겨난 곳에서는 가뭄과 싸우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과제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두 창조 이야기는 모두 무력한 인간이 거대하고 적대적인 자연의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하는 각박하고도 처절한 처지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당시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선언하신 말씀들은, 자연을 지배하라는 뜻이 아니라, 엄청난 자연 재해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에 맞서 싸워서 건강하고 멋진 생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람들이 자연을 신성시하고 섬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 말씀들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영국 대영박물관에는 이집트 시리아 그리스 등지에 있던 신전들에서 옮겨 온 엄청난 석상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그 가운데는 창조 이야기가 씌어진 시기(BC 900~BC 500년 경)와 비슷한 때에 만들어진 것들도 많다. 사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크기가 집채만 한 형상, 사람의 몸에 뱀이나 개(혹은 늑대나 여우)의 머리를 한 형상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대개 그 당시에 그 지역의 수호신으로 숭배를 받던 것들이다. 지금으로부터 2~3천여 년 전에 사람들이 해와 달을 섬기고 동물을 수호신으로 섬겼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엄청난 신상들을 실제로 보면서 사람들이 그 앞에 절을 하고 때로는 사람을 바치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이처럼 자연이 신격화되고 사람들이 그것에 예속되어 종노릇하던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최대의 과제는 그런 신격화된 자연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고유한 지위를 찾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창조 이야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창조 이야기에서는 해와 달과 별들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신들이 아니라 이 세상을 비추고 밤하늘을 밝혀 주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어린아이가 가로등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듯이 비로소 고대인들도 별들을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을 탈신성화, 탈마법화시킨 이후에 자연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다시 자연을 신성화하거나 마법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일신 세계관을 가진 서구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 온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범신론적 세계관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 파괴의 원인을 막연하게 유일신 종교와 범신론적 종교 사이의 차이에서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으로 하여금 이기적인 욕망 추구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식민주의나 자본주의의 요소들에서 찾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장 28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구절(창 1:27)도 오랫동안 잘못 해석되어 왔다. 흔히 사람들은 이 구절이, 사람이 하나님의 어떤 속성을 닮았다거나 어떤 본질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곤 했다. 이를테면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이성적인 존재라거나, 불멸하는 영혼을 가졌다거나, 양심과 도덕성을 갖추었다거나 하는 주장들이다. 이런 해석은 그런 고상한 본질을 소유하지 못한 자연에 대해 함부로 대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을 합리화해 주었다.

그러나 창조 이야기에서는 사람은 신적 본질을 소유한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 가운데 하나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신다(창 3:19). 사람을 동식물과 구별되는 이성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나 사람의 특징을 불멸하는 영혼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 철학과 헬레니즘 세계에서 잘 알려진 것이지, 창조 이야기에서는 낯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졌음을 뜻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문구에서 ‘형상(Zelem)’이라는 낱말은 초상(肖像)이라는 의미도 된다. 고대 사회에서 왕들은 자신이 몸소 행차할 수 없는 왕국의 각 지방에 자신의 통치권에 대한 상징으로서 자신의 초상을 세웠는데, 이와 같이 하나님도 자신의 형상을 한 인간을 자신의 통치권을 대리하는 존재로 이 세상에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백성들에게 왕들의 초상이 과연 반갑고도 자비로운 상으로 다가왔을지는 의문이다. 로마의 황제는 넓은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상을 도처에 세우고 동전에도 새겼는데, 식민 지배를 받는 백성들은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두려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은 로마황제와는 다른 어진 임금이라고 설명을 하더라도 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의 지배가 반가운 것일 리는 없다. 이 또한 인간중심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을 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한 다음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창 2:15). 여기서 ‘돌보다(abad)’라는 낱말은 동산을 경작하고 가꾸는 농사일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사람은 동식물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식물들은 광합성을 하고 벌들은 부지런히 꿀을 모으고 땅속에서는 온갖 미생물들이 땅을 기름지게 만들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무언가를 창조한다거나 노동을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창조와 노동은 인간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앞서서 창조하시고 일하시면서 그 지으신 세계를 사람에게 맡겨서 또한 창조하고 일하게 하신다.

창조 이야기에서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구절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작품들에 대해서 흡족해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도, 땀 흘린 수고 후에, 글을 한 편 탈고한 후에, 멋진 그림을 완성하거나 작곡을 끝내거나 멋진 집을 지은 후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좋다!’고 소리를 지른다. 이것은 사람만이 갖는 기쁨일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고 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창조 활동과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할 동반자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또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하신 것이다(창 1:26-27). 여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한 장으로 된 그림이나 원판 같은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라고 하셨다. 또 지음받은 사람도 한 장의 복사본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나타나며, 그것은 ‘형상’의 의미가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어떤 ‘상’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낼 수 있는 어떤 ‘관계’임을 의미한다. 창조 이야기 전체에서 나타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이다. 짐승들도 암수가 한 쌍을 이루고 새끼를 낳고 번식을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남녀의 사랑은 그런 것과 같은 것일 수 없다. 그것은 더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자기를 내 주고 다른 사람과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 남녀의 사랑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하나님의 사랑에까지 눈 뜨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고대사회에서는 중요한 인권 선언의 의미를 갖는다. 노예제를 기본으로 하던 그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고 선언한 것은 파격적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하나님이 살인을 금하실 때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을 그 근거로 드신다(9:6). 그것은 당시 사회에서 당연시되던 인종과 신분과 성에 따른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사람이 사람을 해치거나 살해하는 데 대해 강하게 제동을 거는 것이다.

누구도 바람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 흔들릴 때 바람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다시 만났을 때 에서가 지난 일로 보복을 하지 않고 너그럽게 대하자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 하였다(창 33:10).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종말의 날에 대해 말하면서, 그 날에 다른 피조물도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날을 기다리며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고 한다(롬 8:19-22). 오늘날과 같은 자연 파괴가 시작되기도 전인 이천여 년 전에 바울은 이미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었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구원받는 미래를 내다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피조물들이 간절히 보고 싶어 하고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얼굴일 것이다. 이제 우리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볼 것이 아니라 흐르는 냇물과 강물에 그리고 우리를 응시하는 저 동물들의 눈동자에 비춰 볼 일이다. 거기에서 언뜻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도 있으리니.